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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오신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요1:10-18)
함태주 2016-01-09 추천 0 댓글 0 조회 473

20160103㈜주일예배

본문 요1:10-18


제목 예수-오신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이렇게 신년 첫 주일 성도님들을 뵙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새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시작 하면서 많은 소망들을 품고 계실 줄 압니다.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하시는 일들에 대해,

혹은 집안 살림, 건강에 대해


저는 올해 교회에 대한 섬김의 제일 우선 순위를

예수를 깊이 알고 닮아가는 교회가 되는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물론 이 목표는 평생에 걸쳐 진행 되어야 할 것이기에 한 해의 목표로만 삼기에는 큰 주제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예수를 깊이 아는 것 만이 모든 신앙의 근본적인 답이요 해결 책임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 비가 오긴 하지만 여름에는 누구나 찾고 즐기는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수박입니다.


그러나 이 수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수박에 대해 설명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양을 설명합니다. 둥그렇고 검은 줄이 위에서 아래로 뺑 돌려 가며 있다. 속은 뻘겋고 검은 씨가 있다. 여름에 냉장고에 넣어다가 먹으면 그 맛에 비할 바가 없다. 그런데 이 설명을 들은 사람은 머리 속으로는 그려보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보지도 먹어보지도 안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제발 수박이 뭔지 알기를 소원 했습니다.


그러나 수박이 주렁 주렁 달린 수박 밭을 지나가도 그는 그것이 정말 수박인지 몰랐습니다. 겉은 설명 들은 것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 수박을 따서 직접 먹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수박인줄 알고 먹었는데 아니면 큰일 날까 싶어 두려워 안 먹은 것입니다. 그러다 수박 주인이 나타나 의심과 두려움의 눈으로 수박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박 맛보시려우 , 이게 수박입니까? , 이 수박이 그 유명한 달고나 수박입니다. 정말, 수박입니까? , 수박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주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가버렸습니다. 자기 생각에 왠지 그것은 수박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참 더울 때 친한 친구의 집에 갔을 때 였습니다. 친구가 시원하고 먹음직스런 과일을 냅니다. 그러면서 하나 먹으라고 말하지도 않고 자기가 먼저 큼지막한 것을 집더니 순식간에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곤 또 하나 집어 먹으면서 , 왜 안 먹어? 먹어 하는 말에 얼떨결에 집어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수박 속살이 부서지며 나오는 그 시원하고 달콤함이 온 몸에 전율을 하였습니다. 한 입을 베어먹고 뿅 간 친구는 정신 없이 수박을 갉아먹으면서 물었습니다. , 그런데 이 과일 이름이 뭐냐? 그러자 친구가 답을 합니다. , 너는 아직도 이걸모르냐. 수박?


그 순간 그토록 알고 싶었던 수박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사라졌습니다.

이게 수박이구나,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것이 수박이구나.

전에 봤던 그 밭의 둥글둥글 했고, 주인이 먹어 보라 했던 그 것이 수박이었구나. 아 진작에 먹어 봤더라면 20년은 더 빨리 수박을 즐겼을 테데!

 

그는 수박 맛에 홀딱 반하여 정신 없이 먹으면서도 속 깊은 곳에서는 후회가 밀려 왔습니다. 진작에 내어 먹어 볼걸, 진작에 먹어 볼걸!

이 후로 이 사람은 수박 전도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알면 어떻게 됩니까? 평생 예수 위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 주 예수 밖에는 없네 하고 찬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알지 못하면 듣긴 들어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두렵습니다.

오랜 시간 교회 생활을 했어도 예수를 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힘을 일어가는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더 깊이 알아가지 못함으로 이 세상을 이길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다 하면서도 삶이 예수의 인격을 뒤따라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히 어떻게 예수님의 인격에 우리를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를 향하신 구원은 죄에서 이끌어 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단계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품을 가지고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온 천지를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자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은 자들로 성숙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표를 시시하게 잡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인격적 훌륭함에 이르기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나 같이 추한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을 소유한 훌륭한 인격적 사람에 이르도록 목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박 맛을 봤으면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 한 덩이 박에 없는 수박을 서로 먹으려고 싸울 때, 기쁨으로 그 수박을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먹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저 갈증 나는 사람이 이 수박을 먹고 산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네 하면서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땅은 자랑 할 것 없는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드러나고,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통해 감격해 하시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있는 동안 우리가 되 어져야 할 모습이요,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이요, 교회는 말 없이도 세상을 비추는 세상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열정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깊이 알고, 그 인격을 닮아가기를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 해 우리 교회는 예수를 깊이 알고, 닮아가는 교회라는 표어로서 함께 도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앞으로 절기에 맞춰 예수를 생애를 따라가며 예수를 알아가고 만나는 설교를 통해서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가급적 주일은 빠지지 마시고 예수를 알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예배를 준비하고 꼭 참여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기도 하실 때 꼭 우리 교우들이 예수를 깊이 아는 은혜와 예수를 닮아가는 영광을 허락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대표기도하시는 분들은 이 기도를 꼭 넣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목사직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만은 예수님을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먼저 예수를 깊이 아는 은혜에 들어가고, 예수를 깊이 닮아가는 인격에 이르도록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새 해 첫 주일이다 보니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씀 드렸습니다.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올해 우리교회는 무엇을 달려 갑니까?

예수를 깊이 알고, 닮아가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자 오늘은 그 첫날입니다. 오늘 요한 복음 본문은 1:1-18절에 기록된 요한 복음의 서론에 해당하는 한 부분입니다.


성경은 성경의 요절 중 요절, 즉 가장 중요한 말씀을 요한복음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꼽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말씀하고, 그 예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시는가를 이 한 말씀에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은 서론에 해당하는 오늘 본문에 요한복음이 말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서론에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명제를 분명하게 묘사하고, 그 이후의 내용들은 그 서론을 증명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서론의 결론을 20 31절에서 내립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가진 하나님이요, 우리를 통치하시며 진리이신 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에 이 예수를 믿을 때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의한 자라는 죄명과 심판과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나, 거듭난 새 사람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누가요? 사도 요한, 곧 예수께 부름 받고 3년을 함께 하였고, 그 가르침을 받았으며, 예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증인, 곧 수박 맛을 친히 보아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도 요한이 예수는 이런 분임을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통해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도 요한은 이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당시에 두 세 부류의 사람들을 경계하고, 믿는 자들은 더욱 견고하게,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은 흔들림 없는 믿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이 복음서를 기록 했습니다.


한 부류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죽였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예수 믿는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변화되기 이전의 사도 바울이 그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호와 성부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 즉 유대인 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칠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고, 부활하셨음에도 그것을 부인하고, 구원은 오직 유대인들에게 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믿는 자들을 신성을 모독하였고 가짜라 하여 옥에 가두고 죽였던 것입니다. 거룩한 선민의 하나님이 감히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푼다는 것을 있을 수 없으며 그것도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이러한 과거의 생각에 머물러 있던 유대인들의 주장과 방해에 맞서 왜 예수가 그리스도인가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헬라사상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예수가 사람이었다는 것은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이 하등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십자가에 죽었고 부활한 예수는 실은 진짜 인간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을 때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어떤 아픔도 격지않았다라고 봅니다. 이것을 가현설이라고 합니다. 인간인척 하였지 실은 신성만 가진 존재였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든 희생과 수고를 거짓말로 만듭니다.


또 한 부류는 예수는 신이 아니라 한 인간이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믿고 따라야 할 신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요즘 사람들처럼 예수께 존경은 표하지만 믿고 따르는 데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으로, 창조자요, 생명이요, 빛이요,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독생자요, 그리스도라고 서론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1-5절까지는 예수님의 신성과 선재성에 대해 증거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1절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고 있기에, 마치 예수는 처음에는 어떤 인격적 존재가 아닌 무엇으로 존재한 것처럼 이해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면 그런 오해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여기에서 말씀이란 헬라어 로고스입니다. 이 로고스는 당시에 헬라어 철학에서 자연 발생한 우주 내에 존재하는 어떤 원리, 혹은 신적정신이라고 보았습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원리가 있는데 그것이 로고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용어를 차용하여 우주를 움직이는 어떤 원리로서의 로고스가 있다고 헬라 사람들이 말하는데, 그 로고스란 실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으로서, 그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그것을 다스려나가시는 분으로서 원리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시고 그 뜻에 따라 우주를 다스려 나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헬라어 용어인 로고스를 차용하여 그 로고스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드러내, 그 예수님이 창조이시며 역사 이전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예수 안에서 인생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 죄에서 벗어나 영원토록 하나님과 가장 높은 차원의 영적 도덕적 차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와서 이 예수를 전했지만 알지 못하였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6-11절에서 그걸 말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하였으니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이 예수를 믿을 때 유대인이 말하는 혈통, 사람의 정욕 즉 죄에 물든 욕심, 혹은 사람의 선한 의지나 노력으로는 될 수 없는 놀라운 권세를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권세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죄로 멸망할 우리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는 주심으로, 이제 죄인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리와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십자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그 예수를 직접 만남에 의해 의심 할래야 할 수 없는 분명한 경험으로 증거합니다. 예수를 깊이 관찰하고 숙고하고 살펴보고 경험을 통해 하나님 되신 예수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을  그 영광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독생자라는 말은 당시 외아들, 외동딸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예수께 사용함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예수는 마치 외동아들, 외동 딸이 아버지와 가지는 유일한 관계 처럼 그렇게 성부와 유일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요,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가진 분이라 증거합니다.


즉 인간으로 계셨던 예수는 성부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를 맺는 분으로 하나님과 같은 권위와 영광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러나 십자가 힘없이 죽으신, 그러나 놀랍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 성부 하나님과 유일한 신적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권세와 영광을 예수를 통해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와 영광을 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기에 뭐가 충만합니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구약시대 성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내신 그 은혜와 진리 되심이, 예수 안에도 그대로 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창조자요 그 권세와 영광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안에 그 사랑과 진리를 그대로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세례 요한 증거한 그 분이요, 그렇기에 우리가 받은 은혜는 모세가 전해 준 율법과는 비교 할 수 없는바, 우리가 받은 은혜와 진리는  권세와 진리를 갖고 계신 하나님 예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 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어떤 분이 만약 대통령 상을 받는다고 했을 때, 대통령 비서가 와서 전해 주는 것 하고, 대통령이 직접 와서 주는 것을 받는 것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자신을 그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모세가 준 불완전한 것과 비교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 모세를 통해서 받은 은혜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론의 결론을 18절에서 내립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여기에서 품속에서 란 말도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가슴속에 있던 예수님이 나왔다라는 장소적 개념으로 읽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어떤 만들어진 존재인가 보다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품속이란 장소적 개념으로 사용 된게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품속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이 얼마나 깊은 친밀한과 사랑속에 있는 가를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 아이와 어머니와의 관계는 더 이상 가까울래야 가까 울 수 없는 가정 완전한 안전한 친밀함을 나타내듯이 바로 그런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는 하나님과 가장 완전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일한 분으로,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 예수는 누입니까? 예수는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원리를 만드신 창조자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영원한 삶인 참 생명을 주시는 분이요, 이 땅에 오셨으나 거부 당하고 죽임 당한 분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사는 권리를 누리게 됨은, 그가 성부 하나님과 유일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으로서 모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직접 보았고 경험한 사도 요한은 증거합니다.


예수는 모든 인간이 믿고 따르고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이 땅에 오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이후에 기록된 1 19-20: 29절까지의 모든 은혜와 진리가 예수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누림이 주어지고, 영원히 이 하나님과 최상의 삶을 사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이 예수를 닮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는 진정한 성공이 뒤 따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셨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이 하나님 예수를 날마다 만나고 경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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