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7 주일예배
본문 요한복음 2:1-11 제목 나를 바꾸실 내 주 하나님
오늘 성도님들 중에는 의심 반 믿음 반으로 오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꼭 예수 믿어야 하고, 따라야 하나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른다면야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정말 예수를 알고 싶고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올해는 내가 좀 변화되고 싶은 소원을 품고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찬 모습을 가지고 어디 빛이 없을까 하고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일요일이니까 늘 하던 대로 오신 분도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 마음이 돌 같이 차가워지고, 기쁨이 사라진 어둠을 안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주님의 깊은 은혜와 사랑을 갈급해 하며 나오셨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우리 각각 마음 깊은 곳에 뭔가 하나씩은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말씀하기를 원하실까요?
아시는 대로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사역을 막 시작 하였을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는 제자들을 막 부르신 때요, 제자로 부름 받은 제자들도 아직 예수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였던 때, 믿음을 그다지 갖고 있지 못하던 때 였음을 말합니다.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피로연이 시작되고 흥이 돋을 때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예수의 어머니께서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아들 예수에게 말씀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나의 때가 아닙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어머니의 부탁에 약간 부정적으로 말씀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어머니께서 부탁하심으로 해서 해야 할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때가 아니라는 말씀을 통해 포도주 문제를 간섭하여 메시야의 영광을 드러낼 때가 아직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성부의 뜻과 때에 철저히 순종을 했습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뜻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말해야 정상 일 것입니다.
“얘야, 상황이 급하니 어떻게 좀 해봐라”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고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하고
한 발 물러섭니다. 재촉하지 않고 예수께 맡겨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어머니께서도 예수의 뜻에 순종하는 자세를 취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들을 못 이겨서가 아니라,
포도주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들에게 말할 만큼 예수의 정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을 존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자신의 시간에 자신의 일을 하십니다.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고 합니다. 밖에서 돌아 왔을 때, 혹은 식사 전후에 부정한 것을 제하기 위해 씻는 물을 담아 놓는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합니다.
하인들은 순종하여 물을 채웁니다. 돌 항아리 하나에 두세 통의 물이 들어갑니다. 한 통은 약 30리터 이고, 두세 통이라 하니까 2.5통으로 잡으면 항아리 당 75L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여섯 개니까 적어도 총 450L 정도의 물을 채운 것입니다.
아마 하인들이 꽤 고생 했을 것입니다. 시간도 걸렸을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갑자기 물을 길어 돌 항아리에 채우라 말에 순종은 하지만 오 만가지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특히 여기에서 하인이란 노예나 종이 아닙니다. 종이라 하면 “둘로이”라는 헬라어를 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쓰고 있는 하인들이란 단어는 “디아코노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종이 아니라 일을 돕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구까지 다 채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께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십니다. 여기서 연회장이란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회를 주관하는 책임자를 말합니다.
하인들은 이번에도 순순하게 순종하여 연회장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러자 그 연회장이 물이었던 포도주를 맛보고 뭐라 말합니까?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말하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 첫 이적 사건의 결론을 이렇게 내립니다. “예수께서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제자들이 비로소 예수의 표적을 보고 어떻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예수는 진정 “하나님의 보내신 구원자””메시야”이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재미 있는 것이 혼인식 신랑과 신부의 모습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회장이 맛보고 놀랐다는 반응은 있지만 그 포도주를 맛보고 즐겼을 하객들의 반응 또한 전혀 기록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께 부름을 받고 막 따르기 시작한 제자들의 반응만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내용을 기록한 사도 요한의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께서 이 표적을 통해 의도하신 것이 바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 인지를 드러내고자 이 이적을 행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온 우주의 원리 그 자체이신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셨고, 그 오신 예수는 이처럼 신적 권세를 가진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에 예수를 따르나 아직 아무 것도 모르고 있고 어떤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한 제자들에게 놀라운 이적을 통해 자신이 신적 권능을 가진 존재임 드러냄으로써 제자들이 믿고 따를 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첫째 예수는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 이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행하신 이적을 통해 요한복음 1장에서 증언한대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육신으로 오셨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임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바로 이 하나님을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예수는 하나님만 소유할 신적 권능을 갖고 계신 분으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오늘 말씀을 포함해 7개의 이적 사건을 사도 요한 요한복음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의 신하를 고쳐주신 사건, 베데스다 연못가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 떡 다섯과 물고기 둘로 5천명을 먹인 오병이어의 사건, 갈릴리 호수 물위를 걸으신 사건, 날 때부터 소경 된 이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여 낳게 한 사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들이 그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이러한 사건들을 제자들 앞에서, 그리고 무리들 앞에서 보여주신 것입니까? 자신의 권능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냄을 받았다하고 하나님과 동일한 자로서 오신 메시야라 할 때 그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고 의심하는 자들에겐 의심 할 수 없는 표적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고, 믿고 따르려 하고 따르는 자들에겐 이분이야 말고 참으로 믿고 따라야만 할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더욱 분명케 하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수박 맛을 보여주어야 수박이 뭔지를 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수박 맛을 보고도 수박을 먹지 않고 수박을 미워하는 부류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졌던 지금까지의 철학과 가치를 가지고 세상적 지위를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스마트 폰 하나면 시계, 알람, 전화, 카메라, 라디오, 컴퓨터, 건강체크, 음악이 한꺼번에 해결 되는데 이러한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의 기술과 실력을 고집하는 회사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노키아입니다. 노키아라는 회사가 있다는 것을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키아 전화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노키아는 사라져 갔고 결국 이 회사는 마이크로 소프트 사에 헐갑으로 팔렸습니다. 한 때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시가 총액이 3천억 유로였던 회사가 54억 유로로 팔린 것입니다. 이 회사도 스마트 폰을 만들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자들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한 폰이 시장에서 살아 남을 것이라고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자신들의 전략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리곤 망한 것입니다.
미국의 하버드 석좌 교수 클레이턴 경제학자는 “혁신가의 딜레마”라는 스테디 셀러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기업의 경영자들이 새롭고 힘든 도전에 나서기 보다는 자신들의 히트 상품과 성공한 사업 모델을 마지막까지 순간까지 방어하는 것을 선택한다” 혁신과 변화를 거부하고 현재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을 더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변화를 읽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해 결국에는 침몰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사에 혁명적 전환기를 마련하신 하나님입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온 인류에게 가져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칼의 힘을 의지하는 시대, 참된 진리가 아닌 우상과 철학을 숭상하던 시대,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구원을 받으며, 이 구원도 유대인 외에는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유대인들의 하나님만으로 가둬 둔 시대, 죄와 그 죄로 비롯 된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시대에 오셔서 당신 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유대인들이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만이 우리를 구하실 참 하나님이시라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퍼져나갔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람취급도 안 하는 우리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시요 그를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
이 소식을 듣고 예수를 자신의 하나님이요 구원주의 주로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신령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방언을 하고, 믿음의 기적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병을 고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이 임하여 죄가 용서된 새 거룩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인내하고 사랑하고 겸손히 남을 높이고 섬기는 새 삶이 시작 된 것입니다. 나아가 삶의 아픔과 절망과 눈물을 이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믿을 때 성령께서 새 힘과 지혜와 소망과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을 때, 의지 할 때 그에게 오셔서 살아계신 증거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그 믿고 찾는 자에게 오셔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아뢰고 구하십시요. 함께 하사 내가 영원히 따라야 할 주이심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말씀에서 주시는 두번 째 교훈은 주 예수는 나를 변화시키실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물리 포도주로 변화되는 이적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진정으로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제자들이 알기를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혼인예식에서 포도주를 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맹물을 즉시 포도주로도 만드실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마치 일하는 일꾼들이 예수께서 하라는 대로 했을 때 맹물이 더 좋은 포도주가 되게 하신 예수님을 본 것처럼 만나는 것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혼인잔치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어떻게 하나 다들 모여 걱정을 합니다. 그 때 예수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에 예하고 답을 합니다. 그리곤 처음 보는 이인 예수가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말에 하면서도 일꾼 된 우리들이 다 채웁니다. 그러자 이제는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합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회의 장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는 지금까지 먹은 보다 더 좋은 포도주라고 칭찬을 합니다. 그 자리에서 모든 수고를 하고 과정을 보았던 일꾼들인,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그 순간 예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라면 나의 어둠과 아픔을 변하여 빛과 기쁨으로 달라지게 할 분이 아닐까? 예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이 스칠 때 였습니다. 예수님의 눈과 우리의 눈이 마주 쳤습니다. 뭔가 깊은 생각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십니다. 마치 나의 속 마음을 아시는 것 같이 깊은 눈이었습니다. 왠지 그 눈에 끌려 나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고 분주하여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기회를 엿보다가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있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 갔습니다. 그러자 발소리를 들으시고 예수가 나를 바라 봅니다. 나는 더 가까이 가서 예수께 인사를 하였지만 속마음을 꺼내는 데는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없이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곤 깊은 사랑으로 꼭 껴안아 주며 말씀합니다. “네 마음을 안다. 네 아픔과 눈물도 알고 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선 어떤 기적도 어떤 놀라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몰려 왔습니다. 어렵고 눈물 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을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놀라운 능력의 예수께서 함께 하셔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후 계속 되는 연회의 심부름과 일이 더욱 신이 났습니다. 짜증을 부리는 아내도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일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결혼식장이 파하고 나서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내일 아침에도 예수를 만나봐야지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예수를 찾아 만났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며 왠지 깊은 신뢰감이 감돌았습니다. 뭐든지 말하면 그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어젯밤 힘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태주야,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
네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세상도 너를 주목하지 않는 줄 내가 안다.
그러나 너는 내가 기뻐하는 나의 신부가 되리라.
네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이 되리라.”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하였고, 벅찬 가슴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이 되고,
예수의 기쁨이 되는 신부가 되리라는 말에 형용 할 수 없는 기쁨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곤 그 이후로 만나 들은 하나님 나라와 교훈들을 마음에 새기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 삶의 길이 되었습니다. 아내를 더욱 사랑하고, 가정에 더욱 충실하고, 이웃을 향한 눈이 바뀌어 사랑으로 불의와 추한 것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내 자신이 달라진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내도 나를 더욱 신뢰하고 자식들은 더 나를 따르고, 이웃들도 나를 신뢰했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예수를 이와 같이 대하고 바라보고 만났다면 다 이렇게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믿고 따라야 할 하나님이심을 증언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물이 포도주가 변함 같이 우리가 죽을 죄에서 영생을 얻고, 어둠에 처한 자가 이 세상의 기쁨과 주님의 기쁨이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나며 새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꾼들이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였던 것 같이, 예수님을 믿고 순종 할 때 우리 안에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 하실 때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 같이 굳은 내 영혼을 예수님의 신부처럼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내 영혼을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는 신부와 같이 단장하여 주실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는 알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행하게 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트릴 힘이 없습니다. 세상의 아픈 환경도 바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와 권세가 필요한 것은 우리의 성공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보 잘 것 없고, 세상이 나를 아프게 함에도 불구하고
쓰러지지 않고 주님의 기뻐하시는 신부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다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예수 안에서 부르신 이유는
성공이 아니라 예수의 신부와 하나님의 아들다움이라는 인격의 성숙을 통한
영광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2016년 믿고 따라야 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십시요.
그리고 그 예수를 만나십시오. 맹물 같은 내 영혼과 몸을 변화시켜주소서.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