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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하시는 예수 (신 26:1-11)
함태주 2016-02-14 추천 0 댓글 0 조회 496

 


20160214㈜주일예배-사순절 첫째 주일

본문 신명기 26:1-11

제목 우리를 구하시는 예수

 

크라이스트처지에서 들었던 말씀 중 가슴에 남은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첫날 첫 번째 강의 였습니다.

강사님이 대뜸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경치일까? 답이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생각하실 때 어떤 경치가 제일 아름답습니까?

우리가 알들이 뉴질랜드는 아름다운 명소가 많이 있습니다.

북 섬에서는 우리가 자주 가는 타우랑아의 마운트 망아누이 산에 올라 내려다 보는 비유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도 처음 거기 올라 파아란 바다와 해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정말 뉴질랜드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북섬 무리와이 비치에 갔을 때 가넷 갈매기들의 군무도 신비와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안 가본 신 분들은 나중에 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또 어디가 아름다울까요? 남섬을 다녀보신 분들은 퀴슨타운과 밀포드사운드가 정말 가볼 만 한 곳으로 추천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아직 안 가봤습니다만 이번에 내려가서 들으니 한번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렇듯 강사의 질문에 이러 저러한 곳을 떠 올리고 있는 순간 강사의 대답이 뒤통수를 꽝 하고 때렸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환한 얼굴이다

A big open face

 

우리 서로 인사합시다.

성도님의 환한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경치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만 억지로 안 되는 게 밝은 웃음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마음이 어두우면 눈도 웃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웃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 기쁨이 사라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의 모든 부귀와 힘을 가졌고, 부인도 천명이나 있었던 왕, 나아가 가장 지혜로운 자로 지금까지 일컬음을 받는 솔로몬이 말년에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2:10-11)

 

젊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힘써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다 헛되더라는 것입니다. 무익하더란 것입니다. 이것이 노년에 철이든 솔로몬 왕의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수고는 다 헛될 뿐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자 되신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쁨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품 안에만 행복해지도록 지음 받은 존재 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명기란 말은 한자어로 거듭할 () 명령할 ()자를 쓴 것 것으로 반복 된 명령이란 뜻입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받은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다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비로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 백성들에게 다시 재 해석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예수님 오시기 300년 전에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에서는 신명기를 Deuteronomion이라 표제를 붙였습니다. 2라는 뜻을 가진 Deuteros와 율법(law)이란 뜻을 가진 nomos를 합친 것입니다. 2의 율법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이 용어를 차용하여 영어성경에서는 Deuteronomy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칠십인역을 따라 거듭할 신자를 써서 신명기라 합니다. 모세가 반복하여 증거한 두번 째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에 한 명령인데, 여기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그 땅에서 얻은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에 대한 것입니다. 첫 수확물 중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가져다 드리라는 것인데 하나님이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첫 수확물 중 가장 좋은 것을 드림을 통해서 이 복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깨닫고 기억하게 하려 함입니다.

 

그래서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제자장 앞에서 고백해야 할 내용까지도 가르쳐 줍니다. 형식이 아니라 그 깊은 의미를 가슴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3, 5-10절 전 반절까지이어집니다.

우리 다시 한 번 3-10절까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 조상 소수의 아람 사람들이 애굽에 들어가 거기에서 번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애굽 사람들에 의해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격었고, 혹독한 중노동을 했으며, 자유를 박탈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 사람에게서 큰 권능의 손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얻은 첫 열매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제일 좋은 열매를 먹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애굽의 고통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에 들어가 살게 된 그 복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애굽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에서 이르고 그 열매를 먹으며 자유를 누리는 복을 얻게 됨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였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타우랑아에 게를 잡으러 갔습니다. 게 잡는 게 재미 있기도 하고, 또 교우들하고 함께 나누면 좋겠다 싶어서 작정하고 가서 게를 잡았습니다. 게를 넉넉히 잡고 돌아 오려고 할 때 였습니다. 대충 씻고 차에 가는 중에 동양 사람이 저를 불렀습니다. 한국 말을 서툴게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인 줄 알고 반가워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국에서 3년간 공장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힘들지 않았냐 했더니 힘들어요라는 말에 자신의 고생한 모든 것을 담아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에 15시간을 일했다고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150-20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곤 여기서 결혼 했다고 환하게 웃으며 예쁜 아내를 소개했고 아내의 오빠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얘기하면서 혹시나 한국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까봐 전전 긍긍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생각보다 밝은 표정으로 아내와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 친구의 착한 눈빛에 한 시름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15시간씩 공장에서 일했다는 말을 들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향이 그리웠을까를 생각 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편 이렇게 3년도 힘들어요 하며 그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이스라엘은 요셉이 죽은 이후 적어도 200년은 노예처럼 학대당하며 자유를 빼앗긴 삶을 살았으니 그 고통이 오죽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케 되고 약속의 땅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바로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내어 자유와 풍요를 주신 하나님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에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어다. 첫 맏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경배한 후에 레위인과 함께 거하는 객들과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레위인들과 객들은 땅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객으로 지내는 약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즉 드려진 제물을 이들과 나눔으로 하나님의 복에 함께 참예케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 우리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사는 길, 이 사회의 소망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드릴 뿐 아니라 그것을 가진 것이 없는 자들 약한 자들과 함께 나누는 이 명령에 순종 함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서입니다. 어떤 순서입니까? 먼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구원의 복임을 고백하고 첫 맏물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경배하는 것이요, 그 다음이 그것을 약한 자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제일 우선 순위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자유와 풍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경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우리의 생명과 삶과 자녀와 모든 인생의 길이 다 하나님에 의해 비롯 되었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라고 성경이 말씀함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내 생명을 주신 놀라운 창조주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에 합당한 예를 갖추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물고기에 비유하여 표현하자면 물고기 물을 떠날 수 없듯이, 우리는 은혜의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뉴질랜드는 목축 산업이 매우 발달했고 주된 산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농장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말도 있고 양도 있고 사슴도 있습니다. 그런데 농장 가운데 부근에는 꼭 시멘트로 된 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항상 물이 담겨 있습니다. 가축들로 하여금 목마를 때 마다 마시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농장마다 울타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호주에 가면 농장은 농장인데 울타리가 없는 농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땅이 너무 거대하고 넓어서 울타리를 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본 사람이 질문을 합니다. 아니, 울타리가 없으면 가축들이 도망가지 안습니까? 아뇨, 도망가지 않습니다. 농장 가운데 있는 물을 떠나서는 죽기 때문에 도망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의 무수한 파고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사회가 가장 아름다운 경치, 즉 환한 웃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 이르는 예수를 믿는데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믿는 성도임에도 얼굴이 어둡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직장도 번듯하고, 일도 제법 하는데 다시 볼까 끔찍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다 있는데 한 가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함 감사와 경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는 하나님 중심의 삶이 너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이런 때 딱 맞는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수박입니다. 그것도 냉장고에 시원하게 냉장 된 수박입니다. 한국 수박 맛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시원한 수박을 한 입 베어 물 때 그 시원한 맛이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갈증과 더위가 순간적으로 물러갑니다.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도 확 날아갑니다.

 

우리 안에는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오는 은혜로만 채워지도록 지음 받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은혜를 얻지 못할 때 마치 실연 당한 사람과 같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슬픈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메마른 광야에서 짐승들이 우물 곁을 떠나지 않을 때 늘 생명을 유지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생명의 우물이신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 때 우리 영혼은 날 마다 새로운 은혜와 소망으로 가득 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변함없는 그 진실하고 깊은 사랑으로 품어주고 새롭게 하는 사랑이 우리 영혼을 모든 염려와 고통에서 자유 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경치보다 더 아름다운 환한 얼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이웃과 진심으로 자신의 것을 손해 보면서도 줄 수 있는 영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더위에 맛있는 수박을 베어 물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생수를 날마다 마시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6 46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 후 기록 된 말씀입니다. 5천명의 무리를 먹인 후 다 돌아갈 때까지 지켜 본 후에 혼자서 기도하러 산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피곤한 시간에도 예수님 조차 성부 하나님과 교제하러 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왜요? 자신을 무한이 사랑하는 성부 하나님과 만날 때 놀라운 사랑의 충만한 속에서 가장 깊은 평화와 기쁨과 새 힘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끝까지 성부 하나님을 찾아 교제하며 십자가를 지는 그 치욕의 길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이도 예수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삶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이도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 안에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찾고 새롭게 되는 은혜를 덧입는 길을 가십시요.

 

특히 사순절 기간 하루하루 묵상할 말씀을 붙들고 사십시요.

몰랐던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과 은혜를 덧입게 될 것입니다.

어느새 우리의 얼굴과 삶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는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

세상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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