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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함태주 2016-02-23 추천 0 댓글 0 조회 339
[성경본문] 누가복음13:1-9 개역한글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눅 13:1-9

제목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5년 전쯤의 일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의 딸이 한 1년 공부하러 왔었습니다. 그 때 조카를 데리고 한 여학교를 갔습니다. 학교 다니는데 필요한 절차들을 밟기 위해서 였습니다.

 

잘 안 되는 영어로 무사히 얘기를 끝내고 마무리 될 쯤이었습니다. 인터내셔날 학생 담당자가 한 가지를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학교에 올 때 꼭 향수를 뿌리고 오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청결하고 샤워도 자주한다 했더니, No 하면서 향수를 구해서 꼭 뿌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아차 싶구나 했습니다. 그 때가 뉴질랜드에 온지 막 3년 차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몰랐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아시안인으로서 그리고 특히 마늘을 잘 먹는 한국인으로서의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은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맞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키위는 그 냄새를 맡기 때문에 향수를 꼭 뿌리고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뒤로 키위들이 있는 곳에 갈 때는 한 번 더 양치질 혹은 샤워를 합니다. 그리고 향수를 뿌립니다. 그것도 만이 뿌립니다.

키위들과 어울리고 만날 때,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꼭 향수를 뿌리십시요.

 

우리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키위와는 다른 냄새를 풍기는 동양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그 냄새가 나는 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못 맡는 다고 해서 그 냄새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키위 들은 다 압니다. 나만 모를 뿐인 것입니다

 

죄가 이와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런 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하십니다.

특히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망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2천년 전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 할 때 로마 황제는 총독을 통해 통치해 나갔습니다. 그 때 빌라도라 하는 총독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지역, 요단 강 중서부 지역에 있는 사마리아, 이스라엘 사해 서남부지역인 에돔 사람의 땅 이두매지역을 관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통치 할 때 독립 혹은 분리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찾고 자 했던 사람들이 소요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빌라도는 그런 소요를 일으켰던 자들을 무참하게 학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AD37년에 태어나 100년경에 죽은 유명한 유대 역사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요세푸스입니다. 그는 75년에 유대 전쟁사를 썼고, 특히 95년에 쓴 유대고대사에는 예수에 대한 기록들이 들어 있어서 그의 저술들은 매우 귀중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책에서 기록하기를 어느 유월절에는 3천명의 시체가 성전에 가득 찼고, 어느 유월절에는 2만명의 유대인들이 희생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 하에서 많은 고통을 경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13 1절에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빌라도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죽여 제단에 드린 제물이 그들의 피를 뿌리는 악한 일이 자행 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성전에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을 보면서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죄로 치자면 너희들도 마찬 가지여서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할 운명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 성 동남편 성밖 담에 세워져 있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을 들어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이는 빌라도가 성전의 돈을 유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져 18명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해서도 예루살렘에 거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커서 그렇게 되었다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면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다신 한번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시각입니다.

죽을 만한 죄가 없고 경건하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도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회개하지 않으면 그와 같이 다 망할 것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와 같이 다 망할 것이라라는 말씀은 두 사건에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사고로 죽은 것과 같은 그런 죽음을 당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느닷없는 죽음으로 인해 인생이 망한 것과 같은 그런 엄청난 비극이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마지막 때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버림 받는 고통, 즉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완전히 차단 된 영원한 슬픔과 고통이라는 죽음에 처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통이 누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까? 스스로 죄가 없고 경건하다고 여길 만큼 그렇게 올바른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내가 맡지 못한다고 하여 나는 냄새 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내가 나의 옳은 모습에 취해 마치 나는 죄인이 아닌 것 같이 여긴다고 하여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의롭다 인정 받을 만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시 자칭 선한 삶을 산다고 하는 자들, 특히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여기는 자들조차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우리 정체를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많이 져서 그런 것입니까? 드물게 어떤 사람은 심각한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방송에 나오듯이 사람을 잔인하게 해치고도 반성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죄가 분명 할 것입니다. 그러나 99 이상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던 같습니다. 대학생 때 철학에 관심이 있어서 현대 철학 중에 실존철학에 대한 강의를 한 학기 동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의중 죄에 대한 얘기를 꺼내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특별히 죄를 지은 것도 없는 같다.

 

그러면서 회개라는 말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에 가기만 하면 회개하라 회개하라 하는데 뭐 회개할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하지만 60 노 교수요 게다가 철학을 가르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에 대한 깊은 이해에 아직 미치지 못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왜 예수님은 앞선 예에 노 교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다 죄인이라 규정 할까요? 심지어 자신이 의롭다 하는 자들조차 죄인이라 할까요? 인간의 마음과 영혼 자체가 죄에 오염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입니까? 아담과 하와 지은 죄,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죄로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양상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라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희생을 다해 애써주신 부모와 그 은혜를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살아가는 어떤 불효자가 있다면, 그 불효자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의 결과로 2차적인 죄를 범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 태어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것과 같이 사람들간의 관계가 탐욕으로 얼룩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게 혹은 알게 죄를 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따르지 않으려는 것도 하나님을 버린 죄의 결과 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죄의 결과입니다. 개인과 개인, 회사와 회사,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이유가 다 그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과, 자기 회사와, 자기 나라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죄의 모습을 신학적으로 전적부패, 혹은 전적타락이라 말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했다 해서 착한 일, 혹은 공정한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만큼 극한 타락을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들이 우리 눈으로 볼 때는 선한 일도 많이 합니다. 예를 들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겨서 돕고 하는 일들을 합니다. 또 공정한 길을 가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렇기 전적인 부패란 더 이상 악해 질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타락한 그런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타락이란 깊이가 아니라 범위를 말합니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몸과 마음과 영이라는 영역 전체가 죄로 물들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그릇에 물이 담겨 있습니다. 거기에 독 한 방울만 떨어 트려도 독은 그 그릇에 담긴 물 전체 퍼지게 됩니다. 그런 것 같이 우리는 몸과 마음과 영 전체에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살고자 하는 죄,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버리고 살려는 죄가 퍼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선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생각에서 나온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경우, 그 모든 행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쁨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죄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없는 모든 선한 일도 실은 하나님을 저버린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볼 때 인간은 죄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체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죄에 물들어 있는 존재입니다. 나의 정체 또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도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하나님을 버리고 달아나기에 바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6절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한 가지 비유를 듭니다. 한 사람이 무화과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나 되었는데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무화과는 심고 나서 3년이 되면 열매를 맺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일꾼 더러 찍어버리라고 합니다. 그러자 일꾼이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로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말합니다.

 

여기에서 한 사람은 하나님을 말하고, 일꾼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는 이스라엘과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파고 거름을 준다는 것은 예수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이는 마지막 때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다리나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되는 죄의 징벌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두로 파고 거름을 주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의 수고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우리의 처지를 알았습니다.

  1. 그것은 이 땅에서의 고통과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2. 또한 자신의 왜 존재하는 지도 모른 채 헛된 것을 잡기 위해 헛된 삶을 사는 우리의 불쌍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돌이켜 하나님의 창조하신 형상대로 이끌고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죄를 씻을 수 없기에 예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죄는 항상 피의 값으로 씻게 정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을,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에도 그렇게 오셔서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짊어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예수를 믿고 죄인 됨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때 비로서 우리는 영원한 멸망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원한 기쁨과 감사로 살게 됩니다. 죄를 넘어서 이 땅의 고통을 넘어서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또한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또 다른 정체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자유케 되고 새롭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마련하신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이 길로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지도 모른 채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죄에서 익숙해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새로운 정체, 곧 죄에서 자유케 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길만이 진정한 인생의 길, 내가 되어야 할 진정한 인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수 없는 분은 이 부르심 앞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로 나오십시오.

 

그러나 새롭게 거듭난 영혼들은 날마다 주의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며 새 삶의 길을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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