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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이유
함태주 2016-03-28 추천 0 댓글 0 조회 53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5-17 개역한글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0160306㈜ 사순절 넷째 주일

본문 고후 5:15-17

제목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이유

 

지금부터 97년 전 3 1일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는 대 사건이 있었습니다.

1910 8월 이완용을 중심으로 한 을사 5적이 주도하여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 넘긴 한일합병 조약을 반대하여 일어난 3.1 만세 운동이 그것입니다.

 

그 때 조선총독부의 집계에 의하며 약 106만명이 만세 운동에 나섰습니다. 그 중 4 7천여명이 구속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만세 운동으로 인해 무려 7509명이 사망했습니다.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이보다 앞서 1909 10 26,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민족의 원수를 갚은 안중근 의사를 우리는 잘 알 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그 자리에서 체포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러시아어로 꼬레야 우레!!! 하고 외쳤습니다. 한국 만세라는 뜻입니다. 불을 보듯 뻔했던 재판은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1910 326일 처형을 당했습니다.

 

사형 직전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 유언을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토록 대한의 독립을 염원하며 그는 독립의 날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사형 직전 한 통의 편지가 그의 손에 당도합니다.

바로 어머니의 편지였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것이다. 너의 죽음은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아마도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나오너]

 

겨레 독립을 위해 아들을 내어 준 어머니의 비장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 읽는 아들은 또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하나님께 부탁 드리며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겨레는 이렇게 자기 아들의 목숨을 내어 준 어머니의 비장함과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떳떳이 겨레의 십자가를 진 분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희생을 할 때, 그 희생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몸과 목숨을 내어 놓는 전 존재를 다한 숭고함과 고결함이 그 희생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희생을 대할 때 우리를 숙연해지고, 때로는 그러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숭고한 삶이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합니다. 삶의 가치와 방향을 그 삶에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만납니다. 인류전체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역사를 바꾼 전무 후무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입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 되어 태어났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선지자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7:14)라고 예언한 대로 그렇게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 되어 태어났습니다. 그리곤 여느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정하신 율법을 다 지키며 자랐습니다.

 

그리곤 30세가 되어 마치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할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신 후 3년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3년 간 가진 것이나 집이 없이 그렇게 팔레스틴 지역을 떠 돌며 자신이 누구이며 앞으로 되어 질 일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요,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임을 받기 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오실 그 메시야, 곧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로 오실이가 바로 자신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며 자신을 통해서만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르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던 당시의 유대 종교 권력을 잡고 있던 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체계가 무너져 내릴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를 죽일 것을 결의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가룟 출신 유다를 이용하여 예수를 체포합니다. 체포 직전 예수를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마지막 기도를 하나님께 올립니다. 이 두려운 십자가의 죽음이란 고통을 앞에 두고 한 초라한 인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자기를 내려 놓는 기도를 세 번 기도 한 후 기꺼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들입니다. 빌라도와 군중들 앞에서 조롱을 받습니다. 군인들에게 모욕을 당하며 살이 뜯겨나는 채찍에 맞고 또 많은 피를 흘립니다. 그리곤 기진 맥진한 모습으로 골고다 언덕에 올라 자신이 지고 온 십자가 틀에 눕혀집니다.

 

로마 군병들은 늘 하던 대로 30cm에 가까운 대못을 그의 양손과 발에 박습니다. 그리곤 십자가를 일으켜 곧추 세웁니다. 중력에 의해 몸이 아래로 쏠림과 동시에 못이 박힌 손과 발의 부분이 벌어지고 찢어지는 고통이 엄습합니다. 그렇게 예수는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예수는 자신이 부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며 그들이 죽이기도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재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20:18-19)

 

이 말씀대로 예수는 그렇게 죄 없으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찢어지는 고통과 아픔으로 괴로워할 때 그를 바라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조롱했습니다.

성전을 사흘에 짖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네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바라(27:40)

다른 사람들은 잘도 구하더니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바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27:42)

 

그들이 이렇게 욕하고 조롱할 때 예수는 그 아픔 중에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함께 못 박힌 강도에게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며

회개하는 강도를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다른 짧은 말씀들과 함께 다 이루었다 (19:3) 하고는

큰 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말씀으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둡니다.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과 목숨이 이렇게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조롱과 모욕 속에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욕하는 자들의 그 비인격적인 삐뚤어지고 악한 마음과 행위들 마저 용서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게 될 그 죄마저도 자신의 죄 인양 짊어져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 예수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15절에서 말씀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여 그 죄 없이 죽은 예수의 그 깊고 깊은 숭고한 사랑의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깨우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요?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은 죽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이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죽음은 나와 무관한 죽음이 아닙니다. 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죽음 나의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 때문입니다. 어떤 죄입니까?

하나님을 버렸음에도 버린 것 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을 아예 완전히 무시하되, 길을 걸을 때 어쩌다 발에 치이는 돌처럼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며 태평하게 살아가는 죄,

즉 하나님을 무시하고 외면하여 경멸한 죄입니다. 죄에는 벌이 따릅니다.

죄를 지었으니 죄 값을 받아야 합니다. 처벌을 받던 용서를 받던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합니다. 얼마를 내면 되겠습니까? 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하나님이 정한 값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의 생명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나기에 하나님께서 법을 하나 정했습니다. 죄인의 죄를 대신하여 흠 없는 어린 양의 목숨을 바치면 그것으로 죄의 값을 치룬 것으로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긍휼의 법입니다.

 

이것이 구약시대 죄를 용서 받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것은 장차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죽임 당할 예수의 죽음을 위한 예표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표 대로 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와 죽음이라는

죄 값을 당신의 생명으로 대신 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 내 죄 값을 예수께서 죽음으로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죽음은 결코 몰라서도, 잊어서도, 무시해서는 안 될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멸한 나의 죄 값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나 대신 치룬 나를 위한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우리 죄값을 치루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는 거룩한 하나님 예수께서 나의 모든 죄를 다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15절 중반절 이하에서 뭐라고 합니까? 그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러나 부활하셔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수를 위해 살아가도록 하신 구체적인 삶이 무엇이라 하는 것입니까? 그 내용이 16-19절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 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죽음의 미와 그의 부활에 대해서 알지 못할 때 어떤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육신의 눈을 가지고 이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요, 너는 잡종 이방인이다. 나는 할례를 받은 거룩한 자요, 너는 할례를 받지 않은 더러운 돼지다 하면 사람들을 구분하고 차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대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게 보았습니다. 유대인의 혈통이냐 아니냐 하는 육신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마저 흥 십자가에 저주 받은 죽은 놈””사이비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벌 받은 죄인에 불과하다는 현상적인 눈 밖에 갖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다툼이 일어나고 교회가 분란이 생깁니다.

 

이에 바울은 예수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었음을 깨우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상관 없이 다 새롭게 된 거룩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17절의 말씀입니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기에, 예수 안에 있으면, 즉 예수를 내 주 내 하나님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따르는 모든 자들은 다, 예수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새롭게 된 사람들이라는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눈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폄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옛 날 눈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왕년에 이랬다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싹 버리십시요. 교회에서 가장 큰 자,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누구입니까? 어린이 같이 자신을 낮추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께서 친히 자신의 생명의 값으로 부르고 깨끗케 하신 새 생명임을 알고, 주의 그 숭고한 죽음의 뜻으로 된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높이는 새 눈을 가지고 사십시오. 이 눈을 가지고 사람을 바르게 보는 새 사람이 되도록 주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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